생각을 멈추기
끝없는 생각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7/1/2026, 2:19:00 AM
새벽 한 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도 잠자리를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왔다.
낮에 있었던 개발 아키텍처에 대한 열띤 논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주장에서 어떤 점이 유효했는지, 어떤 점은 반박 가능한지, 나의 주장은 얼마나 합리적이었고 어디가 부족했는지를 생각했다. 논쟁의 순간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돌려보고 있었다.
또 내일 있을 회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동안 쌓인 불만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발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상대방을 죄인으로 만들고 정의로운 판사로 집행을 내리는 유치한 상상을 했다. 회의의 순간을 계속해서 반복하여 돌려보고 있었다.
머릿 속에서 무한히 재생되는 영상을 멈추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괴로웠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이 괴로움을 끊게 해줄 생각을 생각해내야 했다.
먼저 왜 멈출 수 없는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의 입장이 명확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판단이 바로 선다면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올바른 판단을 위해서는 대상을 면밀히 관찰해야하고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이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므로 입장이 명확해질때까지는 이 괴로움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절대적으로 올바른 판단이라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타자론을 기반으로 철학하고자 한다. 우리가 아무리 어떤 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사고하고자 하여도 그 테두리 바깥에서 그것을 부정하는 타자는 반드시 존재한다. 따라서 진리와 같은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가 없다.
절대적으로 올바른 판단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을 유한 시간 내에 도출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도 있다.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지금껏 몇 개월을 고민한 문제가 내일 있을 회의 전에 갑작스럽게 풀릴 가능성은 없다.
결국 절대적인 판단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지금 나에겐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안에서 나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판단력 같은 건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애초에 타자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진리를 부정하는 타자와의 영원한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타자론을 구축한 레비나스는 “타자란 내가 죽이고 싶다고 욕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라고 했다. 죽이고 싶은 상대와의 영원한 싸움이 타자론의 운명인 것이다.
정답을 찾아내어서 생각을 멈추겠다는 발상을 유효하지 않다. 정답이 없이도 생각을 멈추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을 멈춰도 괴롭지 않은 방법을 찾아야 한다.
먼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생각은 사람의 정신을 과거나 미래로 보내어 현재를 희생하게 한다. 최근 몇 차례 만난 친구는 매번 자신의 고민을 반복해서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이전 만남에서의 대화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그 고민에 정신이 팔려 이 만남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고민에 빠져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으면 아내는 금방 알아차린다. 지나친 생각은 현재를 갉아먹는다. 정답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적당한 정도에서 타협해야 한다. 즉, 생각을 위해 현재를 얼마나 투자할 것이냐에 대해 진지하게 따져봐야한다.
나의 결론은 ‘기간을 정해두고 생각할 것’ 이다. 이때 기간이란 일주일, 한달같은 단위가 아닌 지금부터 몇분, 몇시간 같은 단위로 한다. 그 시간에 완전히 몰입하여 생각할 수 있는 정도로 정하는 것이다. 이로써 생각이 나의 현재를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게 한다. 오히려 명확한 기간을 통해 현재의 정체성을 ‘OO에 대하여 생각하는 시간’으로 명시적으로 할당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너무나 중요한 생각이라 한 순간도 놓으면 안될 것 같을 때도 있다. 어느 순간 떠오를지도 모르는 아이디어를 놓칠까 두려울 수 있다. 이와 관련된 ‘고릴라 실험’ 이라는 재미있는 연구가 있다. 사람들에게 농구 영상을 보여주고 몇 번의 패스가 오갔는지를 세어보라고 시킨다. 해당 영상에는 누가봐도 수상한 고릴라가 지나가는 구간이 포함되어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참가자가 고릴라를 인지하지 못한다. 이는 직관에 매우 어긋난다. 우리는 우리 일상에서 뭔가 굉장히 특이하고 중요한 것이 지나가면 반드시 인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집중하는 것만 겨우 볼 뿐이다. 내가 아무리 그 생각을 하루종일 보더라도 결코 인지하지 못하는 집중 밖의 영역이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집중을 명확히 깨고 새로운 영역(일상) 에 집중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생각을 멈춰야 하는 이유를 찾아냈다. 남은 것은 생각을 멈추고도 괴롭지 않는 방법이다. 괴로움(번뇌)는 모두 집착 때문이다. 마음 쓴 곳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고 자유로움이다(금강경). 무언가에 대해 괴로울 정도로 계속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집착이 있기에 그러한 것일까. 집착하는 것을 직시하고 버리자.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것은 타자를 죽이고 싶다는 집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타자는 죽여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타자만이 나의 경직된 세계관을 풀어줄 수 있다. 그렇다면 생각을 멈추는 것은 타자라는 귀중한 손님을 예의바르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일 것이다.
타자는 나라는 존재를 ‘자기 완결’의 외톨이에서 구해내는 유일한 희망이자 무한의 가능성이야.
자 이제 생각을 멈추자. 이 생각을 깨줄 타자를 기쁘게 기다리자. 웃으면서 푹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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