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 Mill

퇴근길에 겪은 기이한 경험

5/10/2026, 1:52:00 AM

ant mill

개미는 페로몬을 따라 움직인다.

이 단순하고도 절대적인 규칙으로 인해 때로는 서로가 서로의 꽁무니를 쫓으며 무한히 원을 그리는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이 기이한 현상에는 Ant Mill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는데, 사실 페로몬을 따라 살아가는 한 이러나저러나 모든 개미가 다 같은 처지라고 생각했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에서 나는 개미가 될 수 있다.

어디서부터 들려오는 것인지 마치 공간 자체에서 재생되는 듯한 안내 방송과,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올 때의 잔잔한 진동과 곧이어 스크린도어를 뚫고 전달되는 응축된 공기의 묵직한 파동과,

앞 사람과의 미묘한 거리감과 뒷사람이 보내오는 은근한 독촉과,

이 모든 신호를 나는 의식 없이 처리하면서도 지극히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직장인 군체가 내뿜는 강력한 페로몬 덕분에 나는 책을 보거나 유튜브를 보는 등을 하며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지하철을 타고 내릴 수 있다.


나는 아마 개미처럼 죽을 때까지 어떤 규칙이나 체계를 따를 것이다.

그 절대적이고 암묵적인 지시에 대한 자각은 그것이 사라졌을 때 분명해진다.


하루는 퇴근길에 수영장에 들르기 위해 신분당선에서 수인분당선으로 환승을 해야 했다.

책을 보며 걷다가 수인분당선 플랫폼에 도착하였을 때 문득 섬찟한 기분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퇴근 시간치고는 이상하게 사람이 적었다.

곧이어 열차가 들어왔는데 그 안에 탑승객도 생각보다 적었고

무엇보다 기이하게 느껴진 것은 나와 같이 줄을 서서 열차를 기다렸던 사람 중 다수가 그 열차에 탑승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열차는 급행도 아니었다.

그 많은 사람이 자리가 여유로운 열차를 일부러 타지 않고 보낼 이유를 도저히 떠올릴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운 가운데 열차가 다음 역에 도착하고 몇몇 승객이 내려 빈자리가 났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자리들에 앉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람들이 굳이 서서 가려는 이유 또한 떠올릴 수가 없어 당황스러웠다.


나는 그다음 역에서 내렸는데,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몹시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의심없이 따르던 강력한 페로몬이 영문을 알 수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로써 모든 것이 의문스러워졌다.

에스컬레이터의 오른쪽에 서야 했던가?

이 시간에 바깥이 이렇게 어두웠나?

수영장 직원분이 갑자기 스몰 토크를 걸어오지는 않을까?

미국 드라마처럼 마주치는 사람마다 안부를 물어야 할까?

거리를 걸으며 음악을 들어도 되는 거였나?

아니, 보통 걸을때 음악을 듣나?

모두 불경을 듣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왜 수영장에 가고 있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하기로 정해져 있었나?

그 규칙은 이 세계에서 아직도 유효한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열차는 죽전행이라 내가 내린 역의 바로 다음 역까지만 운행하는 것이었고

그 모든 사람의 행동은 지극히 납득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페로몬이 부재한 세상을 잠시나마 경험한 나로서는,

다시금 그 강력한 화학적 마취에 아늑하게 몽롱해지다가도,

근본적인 의문들이 무섭게 떠오르는지라 이 거대한 Ant Mill 에서 자꾸만 멈춰설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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